대통령 관저부터 피란민 판잣집까지…'전쟁 수도 부산'의 비밀, 마침내 세계로
2025-11-14 18:15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1023일간 대한민국의 심장 역할을 했던 피란수도 부산의 아픈 역사가 마침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향한 중요한 관문을 통과했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열린 문화유산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으로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선등재목록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유산들 가운데서도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충분히 입증되고, 체계적인 보존 관리 계획까지 갖춘 유산만을 엄선하는 단계다. 사실상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할 자격을 얻은 것으로,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부산의 역사 문화 자원들이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세계적인 유산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한층 커진 셈이다.이번에 선정된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20세기 중반 냉전이 낳은 비극인 한국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국가의 기능과 사회 체계를 온전히 유지하려 했던 피란수도의 독보적인 증거라는 점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위에서, 부산은 임시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의 명맥을 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을 품어내며 삶과 희망을 이어가는 터전이 되었다. 즉, 단순히 과거의 건조물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에서 작동했던 정치, 행정, 주거, 항만, 군사 시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우선등재목록 선정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8부 능선을 넘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앞으로 남은 문화유산위원회의 추가 심의를 거쳐 등재신청 후보로 확정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 초안을 제출하는 예비평가 절차를 밟게 된다. 비록 최종 등재까지는 여러 단계가 남아있지만,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했다는 점에서 지역 사회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다.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넘어, 역경을 이겨낸 인류의 회복력과 희망의 상징으로 부산의 피란수도 유산이 전 세계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질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기사 황한결 기자 hangyeol_87@newsonul.com